쇼퍼, 미스터리, 픽션
2016.10.14
그녀가 매장으로 들어가서 "엄마!" 하고 부르면 어머니는 잠깐 반가워하다가 매대 아래 커다란 흰색 나무상자 안에서 빈틈없이 많이도 밀어넣은 비닐봉지를 들려주며 눈치껏―그것이 그녀를 가장 난감하고 모욕적으로 느껴지게 했는데―계산대를 피해 나가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비닐봉지를 들고 나가는 그 순간, 그녀는 그녀가 꿈꾸는 어떤 세계, 취향에 따라 샴푸를 고를 수 있는 백인 소녀의 세계, 혹은 혁명을 꿈꾸는 일개미의 세계,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아니면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면 일순 몸을 드러내는 어떤 다른 세계의 가능성이 아주 닫혀버리는 기분이었다.
김금희, 쇼퍼, 미스터리, 픽션